진시황부터 부산까지, 어묵의 기원과 진화
🏮 어묵, 일본에서 왔지만 우리의 것이 된 이야기
어묵은 이제 한국인에게 익숙한 겨울철 간식이지만, 사실 이 음식의 뿌리는 꽤 복잡하다. 우리는 언제부터 어묵을 먹었고, 왜 ‘오뎅’과 혼용해서 부르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묵의 진짜 영어 명칭은 무엇일까?
1. 어묵의 탄생: 진시황과 피시볼의 기묘한 연결고리
중국의 첫 황제 진시황은 암살을 극도로 두려워했다. 특히 생선 요리를 먹을 때 가시가 발견되면 요리사를 즉각 처형했다고 한다. 이를 피하기 위해 요리사들은 생선살을 잘게 다지고 가시가 전혀 느껴지지 않도록 뭉쳐 쪄낸 요리를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마라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시볼(魚丸, 어환)의 기원이다.
이후 송나라에 이르러 다진 생선살을 쪄내는 조리법이 발전했고, 고려와 조선에도 ‘생선숙편’이라는 요리가 존재했다. 생선을 으깨 녹말과 간장, 참기름을 넣고 반죽해 찌거나 튀긴 요리로, 오늘날의 어묵과 유사하다.
2. 일본에서 꽃핀 어묵 문화: 가마보코와 덴푸라의 등장
일본에 본격적으로 어묵이 전해진 것은 무로마치 막부 시대(15세기 중반)였다. 튀김 문화가 발달한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생선살을 다져 튀긴 요리 ‘사쓰마아게’가 등장했다. 이는 이후 일본의 대표적인 어묵 가공법으로 자리 잡았다.
에도 시대에는 유럽과의 접촉으로 포르투갈의 금육일(TEMPORA) 문화가 들어왔고, 생선을 활용한 튀김 요리가 인기를 끌면서 ‘덴푸라’가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튀긴 어묵, 찐 어묵, 구운 어묵 등 다양한 형태의 ‘가마보코’가 등장하며 오늘날 우리가 아는 일본식 어묵이 만들어졌다.
일본에서는 어묵(가마보코)과 오뎅을 별개의 개념으로 본다. 오뎅(おでん)은 맛국물에 다양한 재료를 넣어 끓여 먹는 전골 요리를 의미하며, 그 안에 어묵이 들어가는 것은 훗날의 일이다.
3. 한국으로 전해진 어묵, 그리고 ‘오뎅’이라는 단어의 정착
조선 후기 왜관을 통해 일본의 튀긴 어묵이 전해졌지만, 당시에는 튀김 기름이 귀했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퍼지진 않았다. 본격적인 대중화는 일제강점기 이후였다.
일본인들이 한국에서 오뎅 요릿집을 운영하면서 ‘오뎅’이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었고, 이후 해방 후에도 남아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묵을 ‘오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한글학회의 순화 운동이 시작되면서 ‘어묵’이라는 단어가 보급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여전히 ‘오뎅’과 ‘어묵’이 혼용된다. 어묵은 가공된 생선 살 제품을 의미하는 반면, 오뎅은 간장 국물에 다양한 재료를 넣고 끓인 요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4. 어묵의 글로벌 표기 논란: Fish Cake인가, Eomuk인가?
어묵의 영어 표기는 오랫동안 논란이 되어왔다. 한국에서도 일반적으로 ‘Fish Cake’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 단어는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생선 가공 음식을 의미할 뿐 한국식 어묵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에 따라 한국어 표기법을 따른 ‘Eomuk’(어묵의 로마자 표기)가 공식 영어 명칭으로 선정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공모전이 열렸고, 단순히 ‘Eomuk’을 가장 먼저 제출한 사람이 당선되는 방식으로 진행되어 논란이 되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로, 인천국제공항 자기부상철도의 명칭 공모전에서 1위로 선정된 이름이 ‘인천공항 자기부상철도’였던 일이 있다. 이는 창의적인 영어 이름을 기대했던 대중들의 반응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었다.
일본의 경우, 어묵을 ‘Kamaboko’라는 일본어 음차 표기 그대로 사용하며 세계 시장에서도 정착했다. 한국 역시 ‘Eomuk’이라는 명칭을 고유 브랜드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5. 부산과 한국식 어묵의 차별화: 왜 한국식이 더 인기일까?
한국에서 어묵 하면 떠오르는 곳이 부산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부산항을 중심으로 어묵 공장이 세워졌으며, 특히 부산 앞바다에서 잡히는 멸치를 활용한 시원한 국물과 함께 발전했다.
부산어묵은 일본식보다 훨씬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고, 국물까지 함께 마시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오뎅이 간장 국물에 재료의 맛을 배게 하는 방식이라면, 한국식 어묵탕은 국물 자체가 풍부하고 깊은 감칠맛을 낸다.
이러한 차별점 덕분에 한국식 어묵은 최근 일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들이 꼭 먹고 가는 음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 결론: 어묵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어묵은 분명 일본에서 대중적으로 퍼졌지만, 그 뿌리는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한국에서도 조선시대부터 비슷한 요리가 존재했다. 현재 한국식 어묵은 일본식과는 다른 스타일로 자리 잡았고, 부산어묵은 한국의 대표적인 식품 브랜드로 성장했다.
어묵의 영어 이름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음식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우리의 브랜드로 만들어 나가느냐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한겨울 포장마차에서 뜨끈한 어묵 한 꼬치를 먹으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의 방식으로 이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